신라 두 명찰 잇는 30여km 호젓한 산행
오어사에서 불국사까지 화엄의 길을 가다
산에 오르면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자기 몫의 산행은 자기가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자기 몫을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이 바로 산행이다. 누가 대신 가 줄 수도 없고 업어다 주지도 않는다. 그래서 피곤해도 천천히 쉼 없이 목적지를 향해 걸어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과 무엇 하나 다를 바 없다.
태풍 에위니아가 북상한다는 일기예보에 하늘이 잔뜩 흐려있다. 그래도 어찌하랴 이미 정한 일정. 운에 맡기고 7월8일 화엄의 길을 나선다. 신라시대 고찰인 오어사와 불국사를 잇는 종주산행은 산이 높지 않고 중간의 오리온목장 목초지대를 빼곤 전 구간이 나무그늘이 때문에 더욱 매력 있다. 신라의 고승 원효, 의상과 자장이 어쩌면 이 길을 걸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능선을 걷다 보면 토함산 불국사 가기 전 기림사란 길출한 절로 내려서는 길이 있고, 석굴암을 둘러볼 수 있는 그야말로 화엄 만다라의 느낌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종주산행 길이기 때문이다.
경북 포항시에 위치한, 신라의 고찰 오어사가 있는 운제산에서 경주시 불국사가 있는 토함산을 연결하는 이번 종주산행에는 포스코에 근무하는 거북산악회 회원들이 동행했다. 백두대간, 낙동정맥을 종주한 경험이 있는 산 매니아라 불러도 좋은 산꾼들이다. 10시간 넘게 산길을 걸어야 하는 고단한 여정임에도 불구하고 정진욱씨, 박재교씨, 김영아씨 등 20명이 이른 새벽 오어사 주차장에 모였다.
고찰 오어사를 잠시 둘러보고 원효암으로 방향을 잡은 일행은 사시구점을 지나 곧바로 시루봉까지 진행하는 2시간여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시루봉에서 간단히 휴식을 취하고 다시 내려와 리본이 많이 달린 왼쪽으로 진행한다. 짙푸른 나무 그늘 사이로 걸어야 하지만 호젓한 산길이라 지리산이나 설악산 같이 유명세를 탄 산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산길에서 사람 만나기란 쉽지 않다. 이 종주길은 운제산과 토함산의 맥이 연결되는 주능선으로 포항 사람과 경주 및 근교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큰 맘 먹고 한번씩 찾아오는 산행길이다.
나무그늘이 터널을 이루어 햇살을 피할 수는 있지만 땀은 비오듯 흐른다. 산을 다니다 보면 유난히 부드러운 산길이 있고 반면 거친 산이 있다. 넉넉한 흙 덕분에 부드러운 산길과 돌 많은 산길과 너덜길 중에 하나를 택하라면 대부분은 부드러운 흙길을 선택할 것이다. 바로 이번 종주길은 비교적 흙이 많아 부드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발길이 뜸한 길이다. 마치 속세를 벗어나 구도자의 길을 걷는 수도승처럼 걸을 수 있는 길이다.
호젓한 오솔길이 이어지고 걸음은 빨라진다. 왼쪽으로 내려가는 임도가 희미해지면서 두 갈래로 갈라지고 다시 능선에서 만난다.
완만한 능선길 무명봉까지 이어져
산을 절개한 임도 왼쪽 비탈진 길로 오르고 내리면 작은 계곡에 이른다. 계류는 경주시민의 식수원인 덕동댐으로 흘러든다. 물이 차갑다. 약간의 늪지대를 지난다. 흐르는 땀을 씻고 계곡을 따라 오르다보면 시야가 확 트이면서 오리온목장 초지에 발을 들여놓는다. 여기서 왼쪽으로 돌아 목장길을 따라가면 된다.
방목하는 소나 염소들은 보이지 않고 마치 산을 개간한 채 방치하는 느낌이 든다. 초지가 끝나는 지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임도를 따라 걷는다. 목장지대를 걷는 3km 구간은 다소 지루하기도 하다. 다만 햇살이 없어 다행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 한다.
가까이 무명봉이 보이는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목장길 임도를 올라서면 폐비닐하우스에서 목장길과 작별하고 왼쪽으로 내려서면 쌍두봉 오름길이 이어진다. 계속 봉우리로 올라붙나 싶지만 8부 능선에서 급비탈 측면으로 지나게 된다. 완만한 비탈길을 한참 내려가면 오래된 임도가 다시 나오고 안부 사거리를 지나면서 완만한 오름길로 이어지고 참봉 월성김씨 무덤을 지난다.
잠시 후 왼쪽으로 산사태가 난 듯한 급비탈 지대를 조심스럽게 올라서니 포항시 경계 길인 성황재와 추령재 갈림길이 있는 무명봉에 도착한다. 시루봉에서 약 3시간 가까이 소요되었다. 이 봉우리는 약 605m로 소나무 두 그루와 바위가 있는 정원 같은 쉼터다. 지나온 오리온목장 일대가 훤히 보이고 14번 국도인 성황재 도로가 뚜렷하게 보인다. 아침 6시 조금 넘어 출발해 11시 조금 넘어 도착했으니 5시간 이상을 걸은 셈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잠시 점심시사와 휴식을 취한 후 잔뜩 구름이 덮여 있는 하늘을 본다. 하지만 산행 중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했다.
김소월의 <산>이란 노래를 불러본다.
<산에는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 산새는 왜 우노/ 서산골 영(嶺) 넘어 가려고/ 그래서 울지/(중략)/ 삼수갑산 가는 길은/ 고개의 천리길>
바위가 있는 약 605m봉에서 포항시 경계를 따라 이어가려면 왼쪽으로 진행하면 되고, 토함산을 가려면 바로 직진해 내려가면 된다. 다만 늪지대에 물이 많으면 시경계길로 들어섰다가 방향을 틀어야 한다. 표지기가 많이 달려 있어 길 찾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 길이 있는 곳까지는 조금 더 가서 방향 전환을 해야 하지만, 늪지대 쪽을 보고 돌면 다시 만나게 된다. 이 봉우리에서 추령으로 향하는 사잇길을 찾아 내려서면 된다. 가파른 내림길을 내려가면 늪지를 만나고 가로질러 오름길로 이어지는데 능선으로 접어들어 좌측으로 난 리본이 있는 길은 형남지맥(성황재쪽) 가는 길과 만나고 계속 가는 방향은 형남기맥길이지만 추령 가는 길과 함께 한다.
형남기맥(낙동정맥의 동쪽으로 흐르는 물줄기 중 가장 큰 형산강 남쪽에 위치한 산줄기. 영남알프스 고헌산 북쪽의 백운산에서 출발, 치술령~토함산~추령~함월산~성황재~만리성산~금오산~고금산을 거쳐 호미곶에서 그 맥을 다한다)의 길과 토함산으로 가는 길은 일맥상통하기 때문에 오리온목장에서 올라왔을 때에는 늪지대를 지난 후 기맥선을 따라 진행하면 토함산으로 가는 길이 된다. 늪지대를 건너면 샘터를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 식수를 보충하면 된다. 갈수기에도 샘이 마르지 않을 것 같이 수량이 풍부하지만 최근에는 물이 말랐다.
무명봉에 올라서고 잠시 후 함월산으로 올라가는 길(왼쪽으로 3~4분) 우측 사면길이 만나는 지점에 도착한다. 우측 사면길로 직행한다. 무명봉에서 이곳까지 1시간 정도 걸린다. 이곳을 지나면 459.2봉으로 무덤과 헬기장이 있는데 모차골로 가는 중요한 기점이다. 여기까지는 길 잃을 염려가 없다.
이 길을 걸으며 화두를 풀 수 있을까
한동안 완만한 길로 가면 사거리 안부에 도착한다. 좌측은 기림사와 선무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골굴사로 내려서는 길이고, 우측은 절골 사거리 안부로 빠지는 길로 이곳은 독도에 주의해야 한다. 바로 오르면 된다. 가파른 오르내림을 열심히 하다보면 459.2봉을 지척에 두고 좌측 급비탈로 이어지는 추령재로 가는 갈림길(많은 리본이 달려 있음)이 있다. 만약 모차골로 빠지려면 10m 정도 올라선 다음 무덤과 헬기장을 지나 직진하여 내려서면 된다. 일단 추령재로 가는 왼쪽으로 내려선다. 여전히 그늘이지만 오름과 내림을 하다보면 풀 덮인 헬기장에 올라서서 대각선으로 직진하니 능선길로 이어지고 두번재 헬기장에 도착한다. 능선을 따라가면서 우측으로 모차골 집들과 도로가 보인다. 추령재까지 가는 길에 보면 우측으로 리본이 있으나 모차골쪽으로 내려가는 길이므로 계속 직진해야 한다.
추령재 가까이 왔는지 감포로 넘어가는 옛길이 보이고 방어용 진지가 허물어진 채 방치되어 있다. 드디어 추령고개에 도착했다. 무명봉에서 이곳까지 걸린 시간은 약 2시간30분. 시계는 오후 3시30분을 가리키고 있다.
백년찻집에서 흘러나오는 은은한 음악소리는 산행에 지친 산꾼들에게 청량제 같은 반가움을 준다. 여기서 물 한 모금 마시며 마지막 구간인 가장 힘든 구간을 걸어야 한다. 백년찻집 좌측 편으로 진입해야만 토함산으로 올라갈 수 있다. 송신탑이 있는 옆 오름길 경사가 제법 심해 밧줄이 설치됐다. 이 길을 올라서면 평탄한 길의 연속이다. 원래 길은 직진해야 하나 잠시 계곡 아래 길로 내려가 지친 심신을 달랬다. 그리곤 다시 오르다보면 원래 가야 하는 길과 만난다. 오늘 걷는 길 중에 가장 힘든 고갯길이다.
안부 사거리를 지나 바위전망대로 오르는데 힘이 부친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마지막 남은 과일과 간식으로 배를 채운다. 이 작은 바위전망대에서 우리가 걸어왔던 능선이 선명하게 보인다.
조금 오르다 보면 새로 세운 팻말이 보인다. 좌측은 토함산 가는 길이고 우측은 샘이 있는 길이다. 우측 토함산 샘물길을 버리고 좌측으로 난 길로 진행하여 안부에 도착하니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으면 도저히 토함산 정상 가기가 힘들다. 마지막 힘을 다해 토함산 정상에 올라서니 예전에 보지 못했던 정상 표지석이 새로 세워져 있다. 오늘같이 구름이 있는 시원한 날씨에도 다소 힘든 산행이었으니 한여름에는 오죽할까 싶다. 게다가 해가 짧은 겨울로 접어들면 종주산행시 야간산행을 해야할 것 같다. 10시간 넘게 걸린 산행이었지만 얼굴에는 미소들이 넘쳐흘렀다.
누구나 산행이 끝날 무렵이면 아쉬워한다. 그렇지만 어쩌랴. 아쉬워도 산을 내려와야 한다. 사람들이 살 곳은 산이 아니라 결국 산 아래 마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에 가는 사람은 산을 내려올 때마다 작은 이별연습을 하는지도 모른다. 이번 종주산행도 마찬가지다. 이런 연습들이 쌓여야 세상을 떠나는 큰 이별도 가능하겠기에 말이다. 화엄의 길을 걸으며 느낀 것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바로 아래 불국사의 전경이 그림처럼 보인다. 화엄의 길은 멀고도 멀었다. 체력에 자신이 있고 호젓한 산행을 즐기길 원한다면 이 종주길을 권하고 싶다. 해가 점점 길어지는 여름철에도 새벽에 길을 나서야만 하루만에 종주가 가능할 것 같다. 꼭 한번 원효와 의상과 자장이 서로 화두를 던지며 수행하기 위해 오어사와 불국사를 넘나들었을 이 종주길을 한번 걸어보시길.
*산행길잡이
오어사-(40분)-첫 헬기장-(75분)-시루봉 정상-(90분)-오리온목장 임도(왼쪽)-(50분)-월성김씨 묘-(2시간15분)-무명묘-(90분)-추령재(백년찻집)-(75분)-전망대바위-(50분)-토함산 정상-(40분)-불국사 옛길 불국사 입구
산이 높지는 않지만 산행 총거리가 30km가 넘는다. 휴식 시간을 감안해 약 12시간 정도 걸리는 다소 체력을 요하는 종주 산행길이다. 이 종주산행의 장점은 대부분을 나무그늘 숲 아래로 걸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오리온목장 초목지대를 지나는 구간은 예외다.
지리산이나 설악산 같이 많은 사람이 다니지 않으므로 호젓한 산행과 당일 종주산행으로 적합하다. 특히 포항시 경계 종주산행으로 인해 중요한 갈림길에서는 표지기가 붙어 있어 길을 잃을 염려가 없으며 등산로도 비교적 잘 나있다.
신라의 고찰인 오어사와 불국사를 잇는 종주산행이어서인지 마치 실크로드를 걷는 느낌의 산길이다. 다만 낙엽이 많은 길을 걸으므로 체력소모가 다소 있을 수 있다. 아울러 능선에는 물을 구하기가 쉽지 않으므로 이에 대한 준비를 충분히 해야 한다. 경주 덕동댐으로 흘러드는 작은 계곡과 포항시 경계종주와 추령재로 갈라지는 무명봉 아래 늪지대에서 식수를 구할 수 있으나 갈수기에는 구하기 힘들 것 같다. 경주 불국사에서 출발하여 오어사로 넘어오는 경우 오어사에서 출발하는 경우보다 체력소모가 다소 덜 하다. 산행 중 함월산 기림사로도 갈 수 있는 길도 있다. 산행을 마친 후 경주나 포항에서 휴식을 취하고 다음날 동해바다를 둘러보는 것도 괜찮은 코스다.
*교통
동서울터미널에서 포항까지 07:00~19:00까지 30~4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요금은 20,000원.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는 06:00~19:00까지 20~30분 간격으로 운행하며 요금은 17,400원. 약 5시간 걸린다.
기차를 이용할 수도 있다. 새마을호의 경우 05:40, 17:40 하루에 두번 운행한다. KTX를 이용할 경우 동대구까지 가서 포항행 통근열차로 환승하는 방법이 있다.
포항시내에서 오어사까지는 오천행 102번, 300번 시내버스를 이용하며, 버스는 12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요금은 1,300원. 오천 구종점에서 하차해 오어사행 마을버스를 이용, 1일 11회 운행.
*잘 데와 먹을 데
식당과 숙소는 오어사 입구에서 산모롱이식당(054-291-7009), 만사형통(291-1171)을 이용할 수 있으나 오천읍내나 포항시내로 나오는 것이 편리하다.
백년찻집 찻집 이름만으로도 차 맛을 느길 수 있는 푸근한 한옥 가옥의 전통 찻집이다. 이곳 '백년찻집' 경주 토함산점은 입구에서부터 시선과 관심을 끌기 충분한 유적지와 같은 느낌을 준다.
*볼거리
오어사 오어사는 운제산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 불국사의 말사이다. 오어사는 <삼국유사>에도 그 이름이 나오는데, 신라 진평왕(재위 579~631) 때 자장율사가 창건하여 처음에는 항사사라고 하였다.
1995년 오어지에서 발견된 동종이 명문을 통해고려 말인 1216년(고종 3)에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으므로 이 기간에 이같은 우수한 동종을 조성할 정도로 사세가 컸다는 것은 짐작되지만, 고려시대의 연혁에 관한 다른 문헌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영일만온천 옛날부터 온정재, 왕어골, 가마골에서 온수가 솟았다는 전설이 있었으며, 1974년 석유탐사 시 영일만 일대 지열이 전국 최고임이 확인되었고 1988년 (주)영일만온천에서 개발하여 대규모 온천휴양지로 조성하고 잇다.
석굴암 국보 제24호인 석굴암은 신라 경덕왕 10년에 김대성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해진다. 석굴암 벽 주위에 조각된 38체는 전체적인 조화를 통해 고도의 철학성과 과학적인 면모를 나타내고 있다. 석굴암은 1995년 해인사 팔만대장경, 종묘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식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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