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속에서 자연의 언어를 찿는다
단독산행을 즐기는 사람은 가능한한 인적이 드문 호젓한 길을 택한다.
그것은 본성적으로 사람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홀로 즐기는 산과의 집적적 만남을 주변의 사람들이
본의 아니게 방해하기 때문이다.
산은 기묘하게도 여러 사람 앞에서는 좀처럼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보이지 않는다.
가끔 산악회의 동료들과 어울려 산을 가거나 또는 혼자 갔더라도 인파가 붐비는 등산로를 따라 산을
올랐던 경우, 산에서의 즐거움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산과 올바로 마주친 적이 거의 없다고
생각되어진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주위의 사람들의 말소리, 발자국소리 둥 .....
어디 그 속에서 아침 햇살이 펼쳐지는 숲속의 그윽한 풍경이 보이고 나뭇잎 흔들리는 부드러운 소리
가 들리겠는가? 산은 주위의 인적이 사라졌을 때 슬며시 우리 곁으로 다가와 속세의 혼탁함으로
뒤덮였던 눈과 귀를 열어놓는 것이다.
자연의 언어는 인간의 침묵 속에서 솟아 오르는 법
우리가 자연의 품 속으로 몰입해 들어갈 때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산의 정경이 보이고 산의 소리가
들려 오는 것이다.
지리산 한신 계곡을 오르다 들었던 얼음장 밑을 흐르는 이른 봄의 개울물 소리, 그 끊어질 듯 이어
지는 생명의 노래소리,
소백산 비로봉 아래서 보았던 한여름밤의 화려한 별무리들. 흐르는 유성들을 바라보며 얼마나 오랫
동안 경탄과 황홀감 속에 서 있었던가~
낙조를 머금고 황금빛으로 흔들리는 천황산의 가을 억새밭은 어떠했던가~
덕유평전의 새벽, 밤새 텐트를 뒤흔들었던 늦가을 바람이 자고난 후, 얼마나 안온한 기분으로 구수
한 밥 냄새를 풍기며 쉭쉭거리는 버너의 거친 숨소리를 들었던 것인가~
백운동 계곡의 안개 속으로 자욱히 퍼져나가던 커피내음, 이끼낀 돌들의 촉감, 새소리, 물소리, 바
람소리, 소리, 소리, 소리들...
이성과 의지는 가장 깊은 활동을 시작한다.
단독산행의 축복은 이렇듯 산의 아름다움에 대한 관조로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산의 피부 깊숙이 침투해 들어간 감각이 이따금 기능을 멈추는 동안 이성과 의지가 내면에서 활동을
시작한다.
나의 지난 생활은 어떠했는가 ~
가족들, 친구들을 사랑하고 잘 대해 주었던가~
그 날 왜 조금만 더 참지 못하고 그다지도 심하게 다투었던가~
이제 내려가면 무엇을 어떻게할까, 내 삶의 목표에 충실할 수 있을까~ 등등으로...
단독산행자는 작은 언덕도 한없이 높인다.
단독산행에 있어서 산의 정상이 산행의 최종 목표치가 아니다.
'가장 드높은 것은 가장 깊은 것으로부터 그 높은 것에 이르는 것이 아니면 안된다'는 니체(Nietzsc-
he)의 말처럼, 홀로 산을 오르는 자는 자신을 실존의 가장 깊은 심연에 내던짐으로서 작은 언덕이
라도 한없이 높게 만드는 자이다.
산을 내려올 때 마다 언제나 새로와지는 육체와 정신, 이것 때문에 단독산행의 예찬자들은 끊임없이
홀로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닐까~
세속의 찌꺼기로 채워졌던 영혼의 잔을 깨끗이 씻어주었던 산행을 끝내고, 집 앞 대문을 밀고 들어
설 때마다 언제나 등 뒤엔 또다시 산의 부름소리가 들리고 내 텅빈 잔이 가득 채워져 옴을 느낀다.
.... 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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