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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설악산 명산산행정보

양평 용문산(1,157m)

by 그린 나래 2011. 7. 4.

양평 용문산(1,157m)

폭설 뚫고 승천하는 용의 등골에 매달리다

용문사~마당바위~정상~용문사 8km

 

   고통스런 식사였다. 몸은 달달 떨리고 노출된 피부는 감각이 없었다. 뭘 제대로 집으려고 장갑을 벗으면 금세 손가락 감각이 없고, 땀에 전 얇은 장갑은 벗어둔 사이에 꽁꽁 얼어 다시 낄 수가 없다. 두꺼운 장갑을 끼니 밥 먹기가 쉽지 않았다. 추위를 예상하고 가져온 휘발유 버너는 고장으로 작동이 되지 않고, 애써 지고 온 국물은 차가워 맛이 없다. 오후 5시가 넘은 시간, 어둠이 빠르게 내리고 있다. 날씨가 급격히 추워진다. 무사히 하산하기 위해선 맛을 따질 겨를이 없다. 폭설만큼이나 놀라운 경지의 추위다. 돌이켜보면 용문산 산행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것이었다.

   출장을 가기로 한 날 서울에 100년 만의 폭설이 왔다. 취재산행이 잡혀 있으나 산행은 고사하고 용문까지도 갈 수 없는 상황이다. 하루 연기했다. 다음날, 눈은 그쳤으나 폭설에 도로가 정비되지 않아 차로 가는 게 여의치 않았다. 얼마 전 중앙선 전철이 용문역까지 개통되었다 하여 용산역에서 전철을 타기로 했다.

   7시 몇 분에 출발하는 용문행 열차를 타려 했으나 출입문 고장으로 1시간 늦게 전철이 왔다. 산행에 동행한 이는 한양공고 산악부 3학년 홍승기와 2학년 김다빈이다. 홍군은 한국외대 예비 신입생으로 이미 대학산악부에 가입한 열혈 산꾼이다. 게다가 대간과 두 개 정맥을 일시종주로 완주한 바 있어 러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잘 가던 전철이 중간에 용문까지 못 간다며 목적지를 바꿔 버렸다. 다시 30분을 기다려 열차를 타고 용문역에 도착, 터미널 근처 식당에서 국밥 국물을 사서 배낭에 넣었다. 밥은 각자 싸왔으나 국물만 데워 맛나게 먹기 위해서다. 설경을 감상하며 따뜻한 국밥을 먹을 걸 생각하니 군침이 돌았다.

   

엄청난 추위로 산의 아름다움도 눈에 들지 않아

   버스로 용문사 주차장에 도착한 시각은 11시30분. 아이젠과 스패츠를 차고 산을 오른다. 전철 연착으로 다 함께 늦어 버린 등산객들이 기다렸다는 듯 산을 향해 돌격한다. 본격적인 입산을 위해 용문사 은행나무 곁을 지났다. 1000년을 버틴 거대한 나무는 강력한 기운으로 산을 지배하고 있었다. 용문사의 용은 바로 저 은행나무일 것이다. 하늘을 향해 치솟은 저 엄청난 나무는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선의 밖에 서 있다.

   앞서간 산꾼들이 러셀한 데를 발로 맞춰가며 올랐다. 그것도 잠시, 마당바위로 이어진 계곡길은 발자국 없는 신설이다. 평소 같으면 좋아라 하겠지만 이런 폭설 후엔 즐겁지만은 않다. 용문산 계곡길은 초행이라 마당바위에서 꺾이는 지점을 잘 찾을 수 있을지 염려스러웠다. 이를 대비해 GPS에 선답자의 트랙을 담아와 쉽게 길을 찾으려 했으나 이 코스의 트랙은 찾을 수가 없었다.

   언제 폭설이 왔느냐는 듯 날은 화창했다. 설경과 대비되는 새파란 하늘과 골짜기를 비추는 햇살. 다만 늦은 출발이 마음에 걸렸지만 야간산행을 할 준비가 되어 있어 걱정은 없었다. 새해 들어 처음 신설을 밟으며 간다는 건 기분이 꽤 괜찮다. 게다가 아직 고등학생인 승기와 다빈은 틈만 나면 장난을 쳐 한층 분위기가 고조되어 있었다.

   계곡이 협곡처럼 좁고 기존 등산로도 좁아 심설 속에서 길을 찾는 게 간단치만은 않았다. 어쨌든 계곡만 따라 가면 되는 것이기에 마당바위까지는 무난히 갔다. 칼로 베어놓은 듯한 마당바위에서 간식을 먹고 본격적인 능선 오름에 뛰어들었다.

   몇 발짝 오르지 않아 발길을 멈췄다. 눈이 깊어 길을 가늠할 수 없었다. 설마한 게 현실이 됐다. 이쪽 저쪽 길인가 싶은 곳을 둘러보지만 경사가 센 사면을 깊은 눈이 덮어 버리니 한 발 한 발이 지뢰밭이다. 눈에 묻힌 너덜이나 덤불이 많아 발이 함정에 빠진 듯 쑥쑥 들어갔다. 길이 표시된 주변의 등고선이 모두 가파르므로 길 찾기에 연연하지 않고 나름 수월한 지형을 쫓아 치고 오르기로 했다. 능선에만 닿으면 길을 만나게 돼 있으니 '그저 가면 된다'는 답이 나오지만 그게 말처럼 간단치 않았다. 바싹 선 비등산로 곳곳에 커다란 바위와 넝쿨이 있어 이를 피해가며 러셀하는 게 무척 고됐다. 승기와 번갈아 가며 러셀하다 이 속도로는 안 되겠다 싶어 힘 좋고 빠른 홍군에게 러셀을 맡겨 버렸다.

   얼른 이 가파른 구간을 탈출하고 싶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두 손 두 발에 양 스틱까지, 평소 거의 쓰지 않는 뒷심까지 보태 용을 써도 능선 꼭대기는 쉬 잡히지 않았다. 오후로 접어들수록 바람이 이상한 소리를 내며 몰아쳤다. 추워졌다. 심설산행의 무서움을 실감했다. 가장 어린 다빈이 걱정이었다. 그러나 괜찮다며 싱글벙글이다. 무서운 십대다.

   마지막 능선 암릉 구간 바위 사이를 승기가 잘 뚫고 올라 등산로에 닿았다. 기쁘지만 낮 시간이 너무 없다. 사진을 찍으려면 어두워지기 전에 정상에 가야 한다. 등산로에는 러셀이 전혀 안 되어 있었다. 앞서 능선길로 올라간 이들은 정상을 포기하고 중간에 다 하산한 게다. 비등산로에서 시간을 허비했다. 벌써 4시다. 집에서 먹고 나온 아침 말고는 제대로 먹은 게 없어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해도 벌써 뉘엿뉘엿 넘어갔다. 일단 정상 아래의 데크까지 가기로 했다. 발 빠른 승기와 다빈이 먼저 오르고 기자 둘이서 꾸역꾸역 오름길을 억지로 삼켰다. '밥을 마당바위에서 먹을걸. 하산하고 내일 다시 올걸. 가벼운 식량을 준비할걸. 전철 말고 기차를 탈걸' 하는 생각들이 스쳤다.

   정상 중계탑이 이렇게 가깝게 보이는데 못 돌아간다. 하지만 생지옥이었던 반세기 전에 비하면 지금의 용문산은 아무것도 아니다.

   6.25 당시 용문산은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1951년 5월18일부터 20일까지 3일간의 용문산 전투가 그것이다. 국군 6사단이 중공군 3개 사단을 이곳에서 궤멸시켰으며 이 전투로 유엔군의 한국군에 대한 불신이 사라지게 되었다. 한 참전자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같은 호 속에 전우의 시체가 함께 있었습니다. 전우의 시체가 썩는 옆에서 대소변을 배설하고, 선 채로 잠깐씩 자고 배는 고파 죽겠는데 먹을 건 없고, 다른 게 지옥이겠습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정말 독하게 싸웠습니다. 물이 고인 호 속에서 그 고통을 참으며 온 밤을 새웠고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는 건 인내력의 한계를 넘은 것이지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출입이 통제되었던 정상은 현재 양평군에서 데크로 깔끔하게 정비해 놓아 멋진 전망대가 되었다.1,157m. 그다지 높은 듯 느껴지지 않지만 정상에서 보면 이 지역에서 용문산이 제왕이란 걸 바로 알 수 있다. 탁월한 높이로 주변 산들을 단숨에 제압했다. 그만큼 조망이 탁월하다. 그러나 기록적인 폭설과 한파가 덮친 용문산 정상은 그리 감동적이지 않았다. 오직 내려가고 싶을 뿐이었다.

   

 통제됐던 정상은 지금 목재 데크로 말끔한 전망대 시설

   바람이 덜 부는 숲 속 데크에서 밥을 꺼내 먹고 하산했다. 이구희 기자의 발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인대가 늘어난 것 같았다. 천천이 걷기에는 무리가 없어 발 빠른 승기와 다빈을 먼저 내려보냈다.

   컴컴한 밤하늘에 안도감이 들었다. 해가 지려할 때는 불안하지만 막상 지고나면 맘이 편해진다. 야간산행은 경치는 없지만 차분이 산행에 집중하기 좋아 나름의 매력이 있다.

   잠깐 방심한 순간 바로 설사면에서 미끄러졌다. 튀어나온 바위에 꼬리뼈가 스쳐, 통증에 눈 속에 그대로 누워버렸다. 산은 마음을 읽기라도 하는 듯 약간의 빈틈도 용서치 않는다. 십여 년 전 이곳 용문산에서 유격훈련 받을 때도 이렇게 쓰러졌었음을 문득 기억해냈다. 예나 지금이나 용문산은 조교처럼 무자비하게 얼른 일어나라고 다그친다. 용문사에 닿자 전투가 끝난 사병처럼 노곤했다.

   

*용문사 원점회귀산행로, 왜 명품 코스인가

   대중교통 통한 접근 편리하고 계곡과 봉우리 전망 탁월해

   "용문산은 1960~1970년대 등산붐이 일기 전부터 인기 있는 산이었어. 봄에는 나물 많이 나고 여름에는 계곡이 좋고, 가을에는 용문사 은행나무 단풍이 좋고, 겨울에는 정상 설경이 좋으니 이만한 산이 어디 있겠어."

   40년 등산기자 경력의 본지 박영래 객원기자는 용문산의 모든 코스를 발로 뛰며 취재해온 기자다. "용문산 백백교, 용문산 뱀탕, 용문산 전투, 용문산 은행나무를 이 산에서는 빼놓을 수 없다"며 그는 말문을 연다. 용문산은 과거에 더 큰 인기를 끌었는데, 자가용이 대중적으로 퍼지기 전 서울에서 대중교통으로 당일에 다녀오기에 알맞은 산이었기 때문이다. 수도권 시민들에게 용문산은 등산을 위한 산 이상의 폭넓은 관광지로 사랑받았다.

   용문산 정상이 개방되기 전, 등산만 놓고 보면 사람들은 백운봉을 가장 즐겨 찾았다. 백운봉 정상 조망도 그만이었지만 사나사계곡이나 용문산 정상, 사원골 등 다양한 코스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백운봉, 중원산, 폭산, 유명산 등은 용문산에 속한 위성봉으로 본다. 그러나 용문산 정상이 깔끔한 데크 전망대로 열린 지금, 명품 코스는 정상을 경유하는 코스다. 용문산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용문사 은행나무이기에 기점은 용문사가 된다.

   처음 주차장에 닿으면 용문사로 이어진 1.5km의 숲길을 걷게 되는데 정갈하고 운치 있다. 용문사에서 정상으로 이어진 길은 전망으로만 따지면 용문봉 능선으로 돌아가는 길이 계곡길보다 낫다. 그러나 험하고 멀어 경험 많은 준족의 산꾼이라도 새벽같이 나서야 하는 코스다. 용문산의 매력은 계곡미를 빼놓을 수 없으므로 용문사 계곡으로 해서 마당바위까지 간 후 능선으로 정상 가는 길이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다.

   하산할 때는 올라온 능선을 타고 그대로 내려가는 게 효율적이다. 이외에 백운봉과 함왕봉, 사나사계곡 코스도 좋지만 보통의 등산객이 하루에 용문산을 맛보기에는 원점회귀 산행이 가장 좋다.

   

*산행길잡이

   하늘로 승천할 듯 바싹 선 산-가팔라 화끈하게 땀 빼는 방심 금물 산행지

   용문산은 바싹 섰다. 굉장히 가파르다는 뜻이다. 들머리인 용문사 주차장의 고도는 120m, 정상은 1,157m이니 5km가 안 되는 짧은 오름길에서 고도를 1,000m 이상 끌어올려야 한다. 게다가 눈이 쌓이면 돌과 계단이 뒤섞인 오르막은 더 험해진다.

   산행이 힘든 데는 '용문산은 가볍게 산행할 수 있는 산' 이라는 수도권 시민들의 오해도 한몫한다. 용문사가 유명하여 많은 관광객이 찾는데 이들 중에는 등산화도 없이 "잠깐 정상에 갔다 오지" 하고 산행에 나서는 경우가 종종 있다. 또 멋모르고 첫 산행지로 서울에서 가까운 용문산을 택하는 이들이 있는데 십중팔구 후회하게 된다. 용문산은 워낙 가파르고 조망도 정상 근처에서야 겨우 열리므로 초보자들이 여유있게 즐기며 갈 만한 산은 아니다. 게다가 용문사를 떠나면서부터는 정상까지 너른 터가 거의 없이 좁은 등산로만 이어진다.

   용문산의 명산명품 산행로는 용문사 원점회귀산행이다. 원점회귀도 여러 코스가 있는데 가장 일반적인 코스는 계곡을 따라 올라 마당바위에서 용문산 남쪽 능선으로 붙은 다음 정상에 선 뒤, 남쪽 능선을 따라 하산하는 코스다. 용문사 골짜기는 아기자기한 풍경이 이어져 지루하지 않고 정상에서의 조망은 산행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다.

   더 길게 타고자 한다면 정상에서 오른편에 있는 용문봉 능선을 타고 정상까지 종주하는 방법이다. 이 코스는 바위능선이라 장쾌한 조망을 즐길 수 있으나 길이 험하고 멀어 산행에 제법 긴 시간이 걸린다. 정상에서 서쪽의 장군봉으로 종주한 다음 상원사로 내려와 용문사로 돌아가는 코스도 있으나 거리가 멀고 별다른 볼거리가 없다. 해가 짧은 겨울에는 계곡 코스가 가장 무난하다.

   평상시에는 길 찾기가 수월하지만 눈이 쌓여 러셀이 되어 있지 않을 때는 주의해야 한다. 마당바위에서 왼쪽으로 꺾어 능선으로 향하는 길이 가장 주의를 요한다. 하산할 때에도 가파른 눈길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쉬어갈 만한 널찍한 터가 적고 산행 내내 근육에 팽팽히 힘이 들어가는 산이므로 초보자는 하산시 다리가 풀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정상은 양평군에서 나무 데크 전망대를 꾸며놓아 깔끔하다. 산행의 실주행거리는 8km, 5시간 정도다.

   

*교통(지역번호 031)

   중앙선 전철이 개통되어 용문 접근이 더 편리해졌다. 용산발 용문행 전철은 05:20부터 22:58까지 운행하며 용문역까지 1시간32분 걸린다. 자세한 전철 운행시각은 서울메트로 홈페이지(http://www.seoulmetro.co.kr)에서 확인 가능하다. 청량리에서도 용문행 무궁화호 열차가 운행하며 06:00~22:40까지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한다. 용문까지 1시간 걸린다.

   동서울터미널에서는 용문사행 직행버스가 1일 2회(08:40, 14:20) 운행한다. 용문행 버스는 06:15부터 21:30까지 2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용문역에서 용문터미널은 걸어서 10분 거리며, 용문사 입구까지 07:10~21:00, 3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교통카드도 이용 가능하며 커드요금 900원, 15분 정도 걸린다. 용문사에서 용문으로 나오는 버스는 07:25~21:20, 3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숙식

   용문사 입구에 숙박업소가 여럿 있다. 송림식당(773-4165), 용문산식당(773-3434), 중앙식당(773-3422), 한마당식당(773-5678), 황해식당(773-3775), 벨라지오호텔(774-9670), 그랜드파크모텔(771-1751) 등이 있다.

 

  *명소

   용문사 은행나무 용문사는 천년이 넘은 은행나무가 있어 유명하다. 신라 선덕왕 2년(913)에 대경대사가 창건했다. 그보다 260여 년 앞선 649년 원효가 창건했다는 설도 있다. 용문사에서는 대웅전과 산신각, 종각, 요사채, 일주문 등이 있으며 이와 함께 대웅전 동쪽에 보물 531호인 정지국사부도 및 비가 있다. 용문사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 30호다. 수령 1100년 정도에 높이 62m, 둘레 14m이며, 한 해 가을에 거두는 은행만도 수십 가마라 한다. 조선 세종 때 정3품 당상직첩을 하사받았다.

   이 은행나무는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세자 마의태자가 망국의 한을 품고 금강산으로 가던 길에 심은 것이라고 한다. 또는 신라 고승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은 것이 뿌리를 내린 것이라는 설도 있다. 고종이 승하했을 때는 큰 가지가 저절로 부러지는 등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마다 미리 알려주는 영험함이 있는 은행나무다.

   

글쓴이:신준범 기자

   

 

참고:월간<산> 2010년 2월호

 

용문산 산행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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