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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광주산행지도

종괘산(375m). 수리봉(337m) 등산지도(전남 화순)

by 그린 나래 2009. 2. 24.

종괘산(375m). 수리봉(337m)

 

 

 

 

 

산행지소개

  종괘산(鍾掛山 374.9m)은 화순의 중서부에 위치한 화순읍 앵남리·도웅리·주도리·서태리와 도곡면 원화리에 걸쳐 있는 산이다.

  일명 각암산(角岩山) 이라고도 하는데, 조선시대에는 이 지방에 가뭄이 들면 능주목사가 친히 와서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였던 곳이다.

  산정에는 옛날 용이 있었다 하여 용샘이라 불리는 맑은 샘이 있었는데 지금은 매몰되어 그 모습의 일부인 적은 샘만이 남아있다.

  멀고 먼 옛날 이 용샘은 명주실 한 꾸리를 다 풀어도 밑에 닿지 않았다고 한다.

  종괘산에는 두가지 전설이 전해져 온다.

  종괘산 용정(龍井)의 암룡이 선녀로 화신하여 옥황상제의 며느리가 되고자 하였다.

  그러나 산에 살던 절의 주지가 깜박 잠이 들어 천문을 열게 하는 종을 울리지 않는 바람에 승천하다가 다시 땅으로 떨어져 바위가 되고

  말았다 한다. 이 때 굉음으로 절도 파괴되었는데, 근래 이 산에서 기왓장과 금동불상이 발견되어 이곳에 절이 있었음이 입증되었다.

  또 하나의 전설은 고려초 태조 왕건 등극당시 어느 날 나주고을 원님이 삼경이 지나 뱃고동소리처럼 광음을 내며 동헌에 나뭇잎하나가

  떨어졌는데, 그 나뭇잎은 삼심리 밖에 떨어진 죽림사 건너편 중봉에 왕자귓대나무로 잎이 다섯개밖에 안남은 천년고목이었다.

  원님은 수행원을 데리고 현장에 도착해 고목을 살펴보니 고목나무 구멍 속에 처녀가 목에 칼이 찔려 있었다.

  원님은 그날 밤 인근 사찰에 하룻밤을 묵으며 그 사찰의 도창이란 스님이 마을 처녀를 살해한 것을 밝혀내고 처벌했더니, 검은 구름이

  몰려와 천둥번개로 고목나무는 쓰러지고 세월이 지나 그자리가 바위로 변했다는 전설이다.

  전설에 따르면, 옥황상제에게 외아들이 있었는데 혼기가 되었으나 마땅한 배필이 없어 천하를 두루 살펴 며느리감을 물색하던 중

  종괘산 용샘에 사는 암룡을 발견하고 마음에 들어 승천하도록 하여 천상의 선녀로 화신시켜 신부가 되게 하였다.

  그리고 산 아래 있는 절의 주지승에게 현몽하여 이르기를 “용샘에서 지금 용이 승천하고 있으니, 용의 꼬리가 샘물속에서 다 나오거든

  절에 있는 종을 울려 술해방(戌亥方)에 있는 천문이 열리도록 하여라.” 괴이한 꿈으로 잠을 깬 주지승은 밖에 나와 산정을 바라보았다.

  과연 용샘으로부터 하얀 물줄기가 치솟고 오색 영롱한 구름이 서북쪽으로 이동하며 용샘을 감싸고 있었다. 용의 승천도 가관이려니와

  꿈속에서 당부한 옥황상제의 엄명이 귓가에 쟁쟁하여 주지승은 용의 꼬리가 다 나오기를 밤낮으로 지켜보고 있었으나 좀처럼 용은

  승천을 하지 않았다. 스님은 3일째가 되자 피곤함을 못이겨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그런데 주지승이 잠든지 얼마되지 않아 마지막 꼬리가 다 나온 용은 서북쪽에 있는 천문을 향해 몇번이나 승천을 기도하였으나 종이

  울리지 않아 천문이 열리지 않으므로 그만 기진맥진하여 종가산 중턱에 떨어지면서 즉시 인형의 바위로 변하고 말았다.

  용이 떨어지는 광음에 잠에서 깨어난 주지승은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고 절도 패진이 되고 말았다.

  한편 암룡이 승천에 실패하자 골짜기에 있던 금두꺼비가 상제의 아들과 혼인하고자 승천을 기도한 것을 본 옥황상제는 노여움이

  머리끝까지 올라 사자인 구렁이를 시켜 금두꺼비를 죽이도록 명하였다.

  구렁이와 금두꺼비의 치열한 싸움은 며칠이 계속 되었고 마침내 구렁이는 금두꺼비를 죽이는데 성공하였다.

  처참한 시신이 된 금두꺼비는 땅위에 엎드러진 채 바위로 변하였고 금두꺼비와 싸움으로 기진맥진된 구렁이는 승천하다가 지상으로

  떨어져 봉오리를 이루게 되어 대사봉(大蛇峰) 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대사봉(大蛇峰)은 두꺼비가 엎드려 있는 바위를 향해 힘차게 내려 뻗어 있다.

  이런 형상은 풍수지리상으로는 명당이라고 전래되어 이곳에 김씨의 선산이 들어 서있다.

  종괘산의 유래는 종을 울리지 못하여 지어진 이름이라고 하며 옛 절터를 입증하는 기왓장이 나와 전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1939년에 이 마을에 사는 김길배씨가 금동입불상을 이곳에서 발견하기도 하여 절터가 있었음을 더욱 굳게 한다.

  하늘을 향해 다소곳이 서있는 바위를 사람들은 각시바위라고 부르는데, 이 각시바위는 마치 선녀가 홍치마를 입고 있듯 아랫부분이

  붉은 바위로 되어 있고, 그 옆에는 천상의 며느리가 되려다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한 암룡을 가엾게 여겨 옥황상제께서 내렸다는 장농과

  밥상이 바위로 변해 나란히 서 있어 농바위, 상바위라고 부르거나 혹 쌍교바위, 마바위라고도 한다.

  각암산으로 불리는 종괘산은「신증동국여지승람」에 "각암산은 현의 서쪽 15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화순)에 "각암산은 현의 서쪽 15리에 있다. 나한산 서쪽 기슭이고 일명 종가산이다."고 수록되어 있다.

 「대동지지」(화순)에 "종가산은 혹은 각암산이라고 하며, 서쪽 15리에 있으며 능주의 경계이다."

 「대동지지」(능주)에는 "종가산은 광산 무등산에서 나와 주의 북쪽 15리에 있다."고 수록되어 있다.

 「1872년지방지도」(능주)에 최북단에 종가산이 표기되어 있고 그 아래에 현재 화순읍에 속한 주도리가 있다..

 

광주에서 817번 지방도를 따라 칠구재터널을 지나 앵남 철도건널목을 건너면 도곡온천 바로 전 원화리 마을이 나타난다.

원화리의 색동두부집 앞 도로에서 바라보면 바로 지능선이 바라보인다..

 

 

※고동바위와 종괘산 개요

 

화순읍으로부터 서남쪽으로 약 5㎞ 지점인 도곡면 주도리 서방에

종이 울리지 않아 용이 승천하지 못했다는 전설을 간직한 종괘산(374m)은

일명 각암산(角岩山) 이라고도 한다.

도곡온천 건너에 소재한 산으로 

도곡온천을 지나다보면 우람하고 뾰족한 바위가 산능선에서 온천쪽을 굽어보고 있다.

 

보는 사람들의 위치에 따라 이름이 다양하게 불리우는데

주전자바위, 고동바위, 문필봉, 남근석바위, 종괘바위, 시루떡바위 등으로

보통은 주전자바위로 많이 알려져 있으나 현지의 동네사람들은 고동바우라 부른다.

 

 종괘산의 유래는 종을 울리지 못하여 지어진 이름이라고 하며

옛 절터를 입증하는 기왓장이 나와 전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1939년에 이 마을에 사는 김길배씨가 금동입불상을 이곳에서 발견하기도 하여

 절터가 있었음을 더욱 굳게 한다.
지금은 조그마한 암자가 이곳에 세워지고 종가사라 하여

 오르내리는 길손들에게 목을 적셔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