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권 오룡산~영축산 르포
부처의 산릉을 따르며 봄을 맞는다
자장암~오룡산~시살등~영축산~에베로리지 당일 산행
양산시와 울산시 울주군 경계를 이룬 영축산(1,089.2m)은 기암절벽을 병풍처럼 펼치며 불보사찰 통도사를 감싸고 있는 명산이다. 영취산, 취서산, 또는 축서산 등의 이름으로 불려오다 영축산으로 이름을 통일한 이 산은 정상을 기준으로 동서남북이 다른 산세를 지니고 있다.주능선을 경계로 동쪽은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가 하면, 반대쪽은 배내천을 향해 지능선을 흘리는 가운데 청수좌골과 우골과 같은 깊은 골짜기가 파여 있다. 또한 시살등(981m)을 거쳐 오룡산(949m)으로 뻗은 남서릉은 억세고도 날카로운 모습을 보이는 반면, 신불산으로 이어지는 북릉은 억새평원이라 불릴 만큼 부드럽고 아늑한 고원평전을 이루고 있다.
통도사 자장암으로 들어선다. 금개구리 전설이 전하는 자장암은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아름답고 고풍스럽게 꾸며주고 있다. 기암절벽을 양쪽으로 펼친 채 솟구친 영축산은 아름드리 소나무 사이로 바라보이며 가슴을 설레게 한다. 아직 맨손으로 폴을 잡기에는 차가운 날씨인데도 반석 위에 흐르는 옥빛 계류를 보노라니 마음은 봄 안으로 성큼 들어선 듯하다.
영남알프스 조망대 같은 오룡산
"백운암 계곡보다 훨씬 수량도 많고 멋진 계곡입니다."
시살등과 오룡산 동릉 안쪽 물줄기들이 모여드는 자장골은 뜻밖으로 풍광이 좋은 골짜기다. 영축산 동쪽은 산세가 워낙 가팔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널찍한 암반이 길게 펼쳐지고, 긴 겨울 가뭄을 거쳤는데도 넉넉하게 계류를 흘리고 있다.
골짜기를 따라 20분쯤 오르자 산길은 지능선으로 올라선 다음 호젓한 허릿길로 이어진다. 된비알 길에 숨을 몰아쉬느라 조용했던 아시안알파인클럽 목요산악회 여성회원들은 둘셋 짝지어 오르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눈다.
"나는 땀 좀 나봤으면 좋겠어."
"얼마나 좋아 옷도 젖지 않고."
허릿길을 따라 오룡산 동릉을 가로지른 임도에 올라서자 양산시 상북면 내석리쪽에서 올라온 등산인들이 우르르 올라서는 우리 일행 모습에 놀란 표정이다. 잔뜩 흐릴 거라는 일기예보와 달리 하늘이 쾌청하다. 양지바른 곳은 땅이 녹아 질척거리지만 그늘진 곳은 얼음이 그대로 박혀 있다.
부드럽게 이어지던 능선은 정상이 가까워오자 가팔라진다. 찬바람이 불어대는데도 장딴지가 뻐근해질 만큼 가파른 된비알을 올려치는 사이 이마와 등줄기에 땀이 배어난다. 땅바닥만 내려다보며 걷다 고개를 들자 수리매에 업혀 하늘로 솟아오르는 기분이다. 아니 독수리가 나는 형상의 영축산 등허리에 얹혀 구름처럼 떠오르는 듯하다.
오룡산 정상 오름길은 진달래숲이다. 산등성이에 진달래나무가 빼곡이 들어차 있고, 나무 사이로 영축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릉은 잡목들로 잿빛에 머물러 있지만, 동쪽 사면은 거무튀튀한 가운데 반짝이며 웅장한 면모를 과시한다.
"오룡산 자락은 풍광과 조망이 좋은데, 영축산과 신불산이 워낙 인기 있어 잘 알려지지 않았어요. 덕분에 깨끗하게 잘 보존된 산이랍니다. 자 보세요. 영남알프스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나요?"
이상배씨(양산 아시안트레킹 대표) 말마따나 오룡산 정상(염수봉 5.8km, 시살등 4.1km, 영축산 6.4km, 내석리 9.2km, 외석리 13.5km)은 영남알프스 조망대다. 영축산으로 뻗어나간 능선뿐 아니라 배내골 뒤로 재약산~천황산~능동산 줄기에 양산 천성산에서 금정산으로 뻗어나가는 낙동정맥과 낙동강 하구까지 바라보인다.
불보사찰 통도사는 영축산과 멀리 떨어진 채 오룡산 동릉 끝자락에 포근하게 감싸여 있다. 무릇 대찰이 큰 산 안에 있는 것과 다른 모습이다. 어찌보면 자장율사는 오룡산 끝자락이 불심을 글어올리기에 가장 좋은 자리라 생각하고 부처의 진신사리를 안치하고 불법을 퍼뜨렸는지 모를 일이다.
"와, 이거 날아갈 것 같은데-"
3월 둘째주 목요일이면 봄이라 할 만한 시기인데 겨울은 산 안에서 빠져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찬바람이 매섭게 불어대며 일행을 매몰차게 몰아친다. 암봉을 내려서자 누런 억새밭. 바람에 사각거리며 가냘픈 소리를 내지만 쓰러지지도 꺾이지도 않고 금빛으로 반짝이며 새로운 계절을 기다리고 있다.
967m봉 가는 길은 작은 암봉들이 연이어 앞을 가로막는다. 왼쪽 허릿길을 따르는 사이 동굴이 보인다. 동굴 안에 고드름은 매달려 있기도 하고 땅에서 솟아오르기도 한다(물방울이 떨어지자마자 얼어 붙으면서 기둥처럼 솟아 오르는 것). 굴 안쪽에 플라스틱 통이 받쳐 있고, 통 안에 물이 얼어 있는 것으로 보아 식수원으로 이용되는 굴인 듯싶다.
시살등 직전 자장암 갈림목에 도착하자 목요산악회 회원들은 배낭을 풀러 먹거리를 꺼내놓는다. 보온통에서 따뜻한 밥과 반찬에 추어탕까지 나오자 누군가 슬그머니 막걸리를 내놓는다. 이렇게 시작된 점심상이고 보니 쉽게 끝날 리 없고, 영남알프스 자랑, 건강 얘기 등 다양한 화잿거리에 쌩쌩 불어대는 찬바람도 맥없이 녹아버리고 만다.
위압적인 영축산 뒤로 극락세계 숨어 있어
임진란 때 왜군을 향해 활을 쏟아붓던 곳이라 하기도 하고, 통도사 방면에서 보면 활처럼 보인다 하기도 하는 시살등에 올라서서 뒤돌아서자 오룡산이 제법 아련하다. 종주산행의 맛이란 이런 것일 게다. 저길 언제 가나 싶었던 봉이 가까이 다가오고 지나친 봉이 점점 멀어지면서 느끼는 뿌듯함일 게다.
한피기고개로 내려서는 사이 바라보이는 영축산은 위압적이다. 거치 바위능선이 솟구쳐 있고, 오른쪽으론 까마득한 절벽이 뻗어 있다. 그렇지만 그 뒤로 누런 억새를 인 채 부드럽게 솟구친 신불산(1,208.9m)이 어서 오라 불러대는 듯하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한피기고개를 지나 투구봉으로 행하는 목요산악회 회원들은 행군하는 용사들처럼 당당하게 느껴진다.
"영남알프스는 엇비슷한 높이의 능선이 고구마 형태를 그리며 뻗어 있기에 산행을 다양하게 할 수 있답니다. 당일 코스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고, 1박2일에서 2박3일까지 산행길이를 늘일 수 있어요. 식수를 구할 만한 샘도 곳곳에 있고요. 요즘은 운문산~가지산~능동산~재약산~배내골~영축산~신불산을 잇는 대종주를 무박산행으로 해내는 이들도 있을 정도니까요. 아마 이렇게 포근하면서도 억세고 부드러우면서도 웅장한 산세를 고루 갖춘 산군은 영남알프스밖에 없을 것입니다."
영남알프스의 멋진 풍광에 넋을 잃고 있는 모습에 이상배씨는 영남알프스 자랑에 열을 올린다. 사실 영남알프스만큼 산릉이 부드럽고도 웅장장하면서도 큰 산군은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엇비슷한 높이의 능선이 커다란 산괴를 형성하며 뻗어 편안하면서도 웅장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밀양시, 양산시, 울주군, 청도군 등 2도 4개 시군에 걸쳐 해발 1,000m 이상 고산을 8개나 솟아 있는 산군이다.
기암은 숲을 뚫고 솟구치거나 육산 등성이에 튀어나와 더욱 강렬하게 반짝인다. 멀리서는 험하게 느껴지던 바위능선을 뜻밖으로 쉽게 오른다. 남으로는 오룡산~염수봉~토곡산 능선이 산그리메를 그리며 너울거리고, 영축산 동사면은 험난함과 함께 등 뒤로 부드럽기 그지없는 억새평원을 감춰놓고 있다. 부처가 극락세계를 꿈꾼 곳이 있다면 바로 신불산 일원이 아닐까 싶어진다.
청수중앙릉이 갈라지는 체이등을 지나 죽바우등을 우회하여 함박재(백운암 0.92km, 정상 1.9km, 시살등 2km)로 내려섰다 함박등으로 올라서는 사이 기운찬 바위능선의 매력에 흠뻑 빠져든다. 바위와 잡목이 어우러진 꽃길 같은 능선을 따르다 봄바람인양 불어대는 춘풍을 맞으며 영축산 전위봉인 억새 봉우리에 올라선다.
추모비가 보인다. 85년 12월 홀로 산행에 나섰다가 실종 이후 석달 만에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이의 직장동료들이 세워놓은 추모비다. 영남알프스는 부드럽지만 곳곳에 바위절벽을 이룬 곳이 많아 추락의 위험도 높은 산이다. 사고자 역시 그런 데서 추락,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다.
"어서들 와서 막걸리 한잔씩 해요."
먼저 정상으로 향한 목요산악회 회원들 정상 바로 아래 영축대피소 천막 안에 들어서 있다. 잠시 막걸리를 나누며 담소를 나누지만 마음놓고 머무르기에는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그런데도 새로운 길을 걸어보고픈 마음에 가장 짧은 지산 코스 대신 이상배씨가 추천하는 에베로리지를 하산길로 택한다.
"2000년 에베레스트-로체 원정대가 훈련하면서 개척한 길이랍니다."
모자를 푹 눌러써야 할 만큼 강풍이 몰아치는 가운데 영축산 정상을 넘고 억새밭을 가로질러 신불산으로 향하다 오후 4시20분 두번째 안부에 도착하자 이상배씨는 에베로리지에 대한 설명과 함께 회원들에게 "폴 접고, 아랫도리에 힘주고" 라고 한다.
쏟아질 듯한 급경사 길이 바윗길로 이어지자 대부분 질린 표정을 짓는데 몇몇 여성회원들은 오히려 표정이 밝아진다. 절벽과도 같은 바위를 로프를 잡고, 발아래가 아슬아슬한 크랙을 타고 내려서는데도 즐겁기만 하다. 반면, 겁에 질린 이들은 얼굴이 하예졌다 붉어졌다 하다가 바닥에 내려서서야 평상심을 찾는다.
보석 같은 능선에서 보석 같은 존재로 변해
두번째 바위지대를 내려서자 거대한 깔때기 형태를 이룬 오른쪽 골짜기 안에 실폭들이 여럿 보인다. 겨우내 얼었던 빙폭들이 안간힘 다해 버티고 있는 모습이다. 이 지역 클라이머들에게 빙벽등반 훈련장이기도 한 금강폭포를 비롯해 수많은 빙폭들이 해가 거의 들지 않는 덕분에 오늘까지는 그런대로 매달려 있겠지만 곧 꽃샘추위가 풀리면 어쩔 수 없이 물이 되어 사라지리라.
"이거 큰일났네. 밥할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집에 언제 가죠?"
산행의 즐거움에 집안일은 전혀 생각하지 않은 듯하던 주부회원들이 골 바닥으로 내려서고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하자 집 생각이 나나 보다. 자녀들이 벌써 학교서 돌아왔을 거라느니, 남편과의 약속을 떠올리며 종종걸음을 걷는다. 산그늘이 등 뒤로 덮는데도 모두들 환하고 활기찬 모습이다. 목요산악회 회원들은 보석 같은 능선을 걷는 사이 보석 같은 존재로 변하고 있었다.
*산행길잡이
초심자에겐 뻐근한 당일산행 코스
지산으로 빠지면 통도사 원점회귀형
영취산은 다양한 산세와 더불어 삼보사찰 통도사가 산기슭에 있는 데다, 가까이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가 접근이 쉽다는 점 등으로 등산인에게 인기 있는 산이다. 하지만 영남알프스 여느 1,000m급 산봉에 비해 험하다. 특히 통도사 방면에서 보이는 동사면은 절벽이나 급경사 오르막을 이루고, 능선 또한 기복이 심하고 바위 구간이 많아 체력 소모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능선 중간중간 통도사나 배내골 방면으로 빠지는 산길이 많아 체력에 맞춰 산행할 수 있다.
통도사 매표소에서 통도사에 이어 안양암 갈림목을 지나 계속 직진하면 산자락을 넘어선 다음 삼거리를 만난다. 여기서 좌회전해 세심교를 건너 T자형 갈림목에서 왼쪽 길을 따르면 서축암을 거쳐 자장암으로 간다.
자장암 주차장(화장실)에서 자장골 왼쪽으로 이어지는 널찍한 산길은 곧 좁아지고 두 갈래 골짜기 중 왼쪽 골로 접어들었다가 지능선으로 이어진다. 이 능선길은 사면 트래버스 길을 거쳐 오룡산 동릉으로 올라붙는다(약 40분 소요).
동릉 길은 완만하다 된비알로 바뀌면서 오룡산 정상으로 이어진다. 오룡산 정상에서 왼쪽(남쪽)은 명수봉으로, 오른쪽 길은 ㅅ히살등을 거쳐 영축산~신불산~간월산으로 이어진다. 승용차를 이용한 원점회귀 산행을 원하면 차를 세심교 부근에 세워놓고, 하산은 영축산 정상에서 시살등쪽으로 향하다 첫번째 갈림목에서 비로암으로 하산토록 한다.
영축산에서 신불산으로 향하다 첫번째 안부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서는 에베로리지는 스릴 넘치고, 함지박 형태의 계곡 하단부에 형성된 금강폭포를 구경할 수 있는 코스이기는 하지만, 낙석 가능성이 많고, 절벽에 매달려 있는 로프의 상태가 좋지 않다. 따라서 경험자와 동행시에나 들어서도록 한다. 특히 골 초입의 군부대에서 사격훈련을 할 때는 절대 들어서서는 안된다.
금강폭포 골을 빠져나오다가 너덜지대에 이르면 왼쪽 사면길로 접어들도록 한다. 물줄기 오른쪽 길을 따르면 군부대 안으로 들어선다. 사면길은 양산~언양간 시내버스와 시외버스가 수시로 다니는 삼성SDI 앞 도로변으로 이어진다.
자장암~오룡산~영축산~지산 코스는 6시간, 자장암~오룡산~영축산~에베로리지~삼성SDI 코스는 7시간 정도 걸린다. 식수는 산행 전 충분히 준비하도록 한다.
*교통
통도사로 가려면 일단 언양이나 양산으로 가야한다. 언양이나 부산에서는 통도사행 노선버스는 시내버스가 수시로 다닌다.
서울-언양 동서울터미널에서 1일 4회(09:00, 13:20, 17:00, 23:30) 운행. 4시간40분 소요. 요금 일반 20,900원, 심야 23,000원. 홈페이지 www.ti21.co.kr
부산-언양 노포동 통합터미널에서 약 30분 간격(06:30~21:00) 운행. 요금 2,000원.
부산-통도사 지하철 1호선 범어사역이나 명륜동역 앞에서 수시 운행하는 언양행 시내버스를 이용, 통도사 앞 하차.
지산 마을까지는 신평시외버스터미널에서 1시간 간격(07:20~21:20)으로 마을버스가 다니고 있다. 요금 900원.
통도사 신평시외버스터미널 055-382-6624, 양산시외버스터미널 055-386-1894.
관광단지에서 통도사 경내로 들어서려면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자장암 6,000원, 지산마을 3,000원, 축서암 4,000원, 삼성SDI 4,000원. 언양 천사콜텍시 055-381-1004.
*숙박
통도사 관광단지 일원에는 숙박업소와 식당이 여럿 모여 있다. 지산 마을 부근에 민박집들은 조용한 편이다. 민박 문의 지산구판장 055-384-8486 주인 안미숙.
통도사 입구 부근의 통도식당(055-382-7070)에서는 맛깔스럽고 다양한 메뉴를 취급하는 음식점이다. 산채비빔밥(5,000원), 정식(8,000원), 버섯전골(1인분 8,000원), 더덕구이, 파전, 도토리묵 등.
글쓴이:한필석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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