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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구 산행지도

영암산-선석산-비룡산 등산지도(경북 칠곡.성주)

by 그린 나래 2011. 10. 19.

영암산 782m , 선석산 742m, 비룡산 579m 경북 성주 초전면, 김천 남면,칠곡 북삼면

 

 

 

 

 

  

 

 

(경북 칠곡) 영암산-선석산-비룡산 ; 골산과 육산의 조화로운 종주  

 

- 영암산 동릉... 암릉 산행의 짜릿한 맛 일품

- 선석산은 부드럽고 넉넉한 육산의 산책로 같아..

- 선석산... 서진산, 누진산 등 잘못된 이름에 혼돈 와..

- 태종바위에서 바라 본 세종대왕자태실.. 명당자리

- 하산 후 신유장군 유적지 구경 ..

 

 

* 미타암-중리지-동릉(암릉)-영암산-세종대왕자태실갈림길-선석산-세종대왕자태실갈림길-비룡산-두만지-신유장군유적지

* 산행시작~종료시간 ; 09시 03분 ~ 3시 37분

* 총 산행시간 ; 6시간 34분 = 산행 4시간 36분 + 정지 1시간 58분

* GPS 실거리 ; 약 12.9 km (이동+정지 평균속도 2.0 km/h)

 

 

* 산행지도와 고도표 ...... 참고하십시오. (랜덤하우스중앙 동아지도 사용)

본 지도의 등로(or 고도)는 GPS 트랙을 그대로 옮긴 것으로서

GPS 수신상태에 따라 등로(or 고도)와 약간의 차이가 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차이가 날 경우는 (별로 없지만) 약간의 편집, 수정작업을 하여 만듭니다.

※ 화살표 표시는 갈림길이 왼쪽이나 오른쪽 방향 표시일 뿐 특정지점 등로 방향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지도 원본 및 GPS 트랙자료

 

 

◎ <날짜> 2011. 12. 10. (일) 대체로 맑음.

 

 

◎ <인원> 마굿간, 전천호, 갈대 (3명)

 

 

◎ <산행지 소개>

 

 

.영암산은 김천시 남면과 성주시 초전면, 칠곡군 북삼면의 경계에 자리한 산이다.

구미 도립공원인 금오산(977m) 정남녘에 자리한다. 영암산 남동쪽으로 선석산(742.4m)과 비룡산(576m)이 당차게 능선을 이어 달려간다.

영암산의 이름은 성주 쪽에서 바라보면 3개 바위 봉우리로 형성된 정상부가 흡사 방울을 닮았다고 해서 '방울 영' 자와 '바위 암' 자를 사용한다. 그래서 그곳 사람들은 방울바위산 또는 방울암산이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 최초의 도립공원인 금오산의 유명세에 눌려 가려져 있었던 산이다.

영암산은 바위봉우리 셋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도에는 남북으로 놓인 영암산의 머리 부분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봉우리(북봉)에 영암산이라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성주 사람들은 가장 남쪽 봉우리를 영암산으로 알고 있고, 거기에 표석까지 세워 놓았다. 사실 지도에 영암산이라 표기되어 있는 북봉은 나무가 많은 흙으로 된 봉우리로 별다른 특색이 없다.

반면 남쪽 봉우리는 사방이 바위절벽으로 된 바위봉우리로 경관도 좋고 조망도 좋다. 또 성주쪽에서 보면 이 남봉이 방울처럼 보여 산 이름은 예서 얻은 것이다. 성주 초전면쪽에서 북봉(지도에 영암산이라 표기된 봉우리)은 보이지도 않는다.

북봉에서 남봉까지는 바위로 이루어져 있으며, 양편으로 바위벼랑을 이루고 있다.

 

 

.선석산은 참외의 고장 성주군 북동쪽의 월항면과 칠곡군 약목면의 경계에 솟아 있는 산으로, 세종대왕 왕자들의 태를 안장한 태실봉을 품고 병풍을 두른 듯 펼쳐진 산이다.

선석산의 이름은 선석사에서 유래한다. 의상대사가 신라 효소왕 1년(692년) 절을 창건하고 이름을 신광사라 했는데, 신라 화엄10찰의 하나로 이름난 절이었다. 그때의 절은 지금의 절 서쪽에 있었다 한다.

공민왕 10년(1361년) 나옹대사가 주지로 오면서 지금의 자리로 절을 옮겼다. 이때 절터를 판판하게 닦는데 큰 바위가 나왔다 해서 절 이름을 터를 닦는다는 뜻의 선(禪) 자와 돌 석(石) 자를 써서 선석사라 했다 한다. 그때 발견된 바위는 지금도 대웅전 앞뜰에 묻힌 채 그 일부가 땅 위에 내밀어져 있다.

영암산과는 달리 바위가 없으며 등성이가 넓고 번번하여 밭을 일구어도 될 정도다. 따라서 선석산은 숲이 좋고 비탈이 가파르지 않아 산길이 산책길처럼 순하다. 고스락은 둘레에 큰 나무들이 많아 조망이 좋지 않다. 이 선석산 아래에 옛절 선석사가 있고, 육관도사가 우리나라 30대 명당이라 했다는 세종대왕 왕자들의 태실이 있다.

 

 

.세종대왕 왕자 태실 ; 세종대왕 자태실(子胎室)은 우리나라에서 왕자태실이 군집을 이룬 유일한 곳으로 전 세계적으로 이런 형태의 유적은 유례가 없다. 세종 20년(1438년)에서 24년(1442년) 사이에 조성된 태실은 세종의 장자 문종을 제외한 모든 왕자와 원손인 단종의 태실 등 19기가 모여 있다. 조선조는 왕과 왕자의 수가 많은 만큼 그들의 태를 묻었던 태실도 많다. 그러나 19기를 한데 모은 태실은 여기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밖에 없다. 이 태실은 그 자리와 방식이 특이하고 전해지는 이야기도 재미있다. 태실은 왕실에서 태를 묻은 석물 시설로, 조정의 관상감에서 장소를 물색하고 안태사로 하여금 태를 묻게 했다 한다.

조선조에서는 풍수지리설의 위력이 컸던 때문에 왕실의 태는 국운과 직접 관련이 있는 것으로 믿고 매우 소중하게 다루었다. 여기 태실은 1438년(세종 20년)에서 1442년 사이에 만든 것으로, 수양대군(세조)을 비롯해 적서 18왕자와 왕손 단종의 태까지 19기의 태실을 안장한 곳이다.

뒤에 수양대군의 폭거에 불복한 동생들인 금성대군, 한남군, 영풍군, 화의군, 안평대군의 태와 장태비를 산 아래 버렸으나, 1975년 기단석을 찾아 복원해서 현재 기단석만 남아있다(사적 제444호).

이 태실은 태실의 의궤에 따라 지하에 석실을 만들고, 그 속에 분청사기로 된 태호를 넣고, 그 위에 기단석 중동석 개첨석을 덮었다. 대군과 단종의 태실, 그리고 단순한 군의 태실이 구분되어 있다.

 

.원래 이 태실 자리는 고려 말 문신이며 성주 이씨의 중시조로 유명한 이장경의 묘지였다. 이장경은 그의 아들 5형제가 모두 과거에 급제했고, 손자 이승경은 원나라에서 큰 벼슬을 하고 큰 공을 세운 인물이다. 조선조 태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직도 그의 후손이며, 이직의 손자 이정녕은 당시 세종의 누이동생의 남편(부마)이었다. 세종은 안태사의 말을 듣고 자기의 매제 이정녕을 파면까지 하며 이장경의 묘자리를 빼앗아 태실로 만들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안태사가 태실을 앉힐 명당을 찾아 여기 인촌리에 들어서자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비를 피하려고 근처의 재실에 들어갔다. 그 재실이 이장경의 재실이었고, 안태사는 이장경의 묘가 명당임을 알아보고 세종에게 보고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정녕은 묘지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그 보고를 무시한 죄로 파면을 당한 것이다.

그러나 이장경의 후손들에게도 과실은 있었다 한다. 이장경의 묘터를 잡아준 스님은 이장경의 후손들에게 '아무리 후손들이 잘 되더라도 여기에 묘각을 세우거나 재실을 만드는 등 묘의 치장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한다. 그러나 많은 후손들이 영달하자 교만해져서 그 스님의 당부를 잊고 재실을 짓고 묘를 치장했던 것이다. 재실을 짓지 않았다면 안태사가 그 재실에서 비를 피하지 않았을 것이고, 따라서 이장경의 묘터를 보지도 못했을 것이었다.

 

 

 

◎ <산행 코스 및 주요지점 통과시간>

 

 

* 가는 길 ; 대구역(08*16. 무궁화호 2,500원)-약목역(08*41 도착 / 08*45 출발)~택시(6,800원)~영암골기사식당, 미타암 입구 (건너편에 숭오1리 버스정류장)(08*53)

 

* 오는 길 ; 신유장군유적지관리사무소(3*37)-걸어서 약 23분-약목버스정류장(복성2리)(~4*22 출발)-버스-왜관남부정류장(4*35 도착)-걸어서-왜관역(4*40 도착 / 4*51 출발 무궁화호 입석 2,100원)-대구역(5*10 도착)

 

09*03

4번국도에 있는 영암골기사식당, <←미타암>안내문 / 건너편에 숭오1리 버스정류장

09*07

묘. 철탑, 미타암 <미타암>표석

09*11

(↑*) 보손지, <사방댐> 표석

09*13

<분묘조사공고>안내문이 있는 삼거리(“Y)..좌측

09*19~20

중리지 앞 삼거리(Y") 우측 들머리 <↑등산로(영암산) 2.8 / →등산로(영암산) 2.4>..산길진입

~

묘1

09*29

전망대 (중리지 조망)

09*40~50

임도(=↑=) <↓보손지 0.9 / ↑영암산 1.5>

09*52

10*00

10*05~09

전망대(금오산, 북삼읍 조망)

10*14

암릉 시작

10*45

암릉 끝

10*49

북봉(784m) (신거리고개,월명성모의집 갈림길)("T) (지형도;영암산)

~

밧줄 구간

10*59

전망봉 (암릉 조망)

11*03~13

<영암산 782m>, 돌탑, <선석.영암 7>위치목

~

계단 下 2곳 - 밧줄 下

11*19~

전망바위 아래 슬랩바위 밧줄 下

11*23

묵묘터

11*24

갈림길("T) <←보손지 2.85 / ↓영암산(로프구간) 270 / →영암산 350>

11*31

보손지 갈림길(1)(-↑) <←보손지 2.2 / ↑서진산(선석산) 2.2 / ↓영암산 0.6> <선석.영암 6>

11*39

보손지 갈림길(2)(-↑) <←보손지 2.2 / ↑서진산(선석산) 1.7 / ↓영암산 1.1>

11*42

세종대왕자태실 갈림길(↑/) <↑선석산 1.6 / ↓영암산 1.2 / ↗세종대왕자태실 2.7>

12*01~47

중식

12*51

바위전망대 (영암산 조망)

1*03~1*08

정상석 2개 <누진산 742.4m><선석산 742.4m>, 삼각점, 묘 <선석.영암 5>위치목 <→비룡산 2.5 / ←시묘산 3.7 / ↓영암산 2.8>

1*10

불광교 갈림길(세종대왕자태실y)(↘) , <↓정상 80m><↘불광교 1.8>小푯말

1*13~14

<용바위>안내문(↑*)

~1*15~

의자바위

1*19

<선석.영암 4>위치목

1*20~22

<태봉바위>안내문(↑*)

1*25

세종대왕자태실 갈림길(“Y) .. <↖비룡산>小푯말

1*34

묘1

1*38

두만리 갈림길(-↑) <두만리>小푯말

1*40~59

각산리(대흥사) 갈림길(“Y), 벤치2, <↓서진산(선석산) 1.4 / ↖비룡산 1.1 / ↗각산리(대흥사) 1.4>

2*05

임도 만남(Y")

2*07

임도 우측 대흥사 갈림길(↑-) <↓서진산(선석산) 2 / →대흥사 1.7 / ↑비룡산 758>

2*13~15

각산리(대흥사) 갈림길(↑=). 벤치2 <→각산리(대흥사) 1.2 / ↓서진산(선석산) 2.2 / ↑비룡산 300>

2*16

남계리(구화사) 갈림길(-↑) <←남계리 구화사 0.6 / ↓서진산(선석산) 2.5 / ↑비룡산 250>

2*20

돌탑

2*22~36

<비룡산 576m> 산불초소 <↑남계리(두만지) 1.3 / ↓각산리(대흥사) 1.5 남계리(구화사) 0.85>

2*44~

갈림길(“Y)..좌측 (우;능선)

2*49~53

배시기 갈림길(↖-), 샘터(1) <→배시기 2140 / ↓비룡산 380 / ↖두만지 820>.

3*00

돌탑, 너럭바위, 샘터(2)

3*06

대형 돌탑

3*08

<↓비룡산 1.3> 개울

3*11

산길 끝 (별장 ?)

3*14

영광사슴농장 (*↑)

3*19

두레두레식당 (-↑)

3*21

두만지(-↑)

3*27

두만지(←|)

3*30

<신유장군유적지>안내문.. 구경

3*37

“신유장군 유적지 관리사무소”

 

 

 

☞ 미타암 ~ 중리지

.약목에서 김천 방면 4번 국도상에 있는 숭오1리 버스정류장 건너편에 있는 <←미타암>안내문과 영암골기사식당이 있는 포장길 따라 가면 묘와 철탑이 있는 미타암(가정집을 개조한 듯)에서 <미타암>표석 우측으로 틀자마자 바리케이드가 있는 임도 따라 진행하면 보손지 사방댐 표석을 지나 <분묘조사공고>안내문이 있는 임도 삼거리(“Y)에서 좌측으로 가면 중리지가 나타난다. 중리지 앞 삼거리(Y")에서 우측 임도 옆 산기슭에 <↑등산로(영암산) 2.8 / →등산로(영암산) 2.4>이정표에서 산길로 올라간다. (임도 무시)

 

 

☞ 영암산 동릉 ; 공룡능선 같은 암릉이 펼쳐져...

.초반 가파른 오르막을 시작하자마자 묘를 지나 허벅지 힘 팍팍~ 들어가는 오름길은 중리지가 바라보이는 전망대를 지나면서 점차 오르막이 수그러지더니 좌우로 난 임도를 건너 다시 산길로 올라선다. <↓보손지 0.9 / ↑영암산 1.5>

다시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지면서 묘 2곳을 지나면 등로 우측에 금오산과 북삼면이 조망되는 전망대를 맞이한다.

이어지는 오름길은 점차 바윗돌이 나타나면서 본격적인 암릉구간이 나타나니 처음 마주치는 암릉을 우측으로 우회하여 밧줄이 걸린 암봉에 올라서니 아기자기한 암릉이 펼쳐지자 생각 외로 영암산 동릉의 암릉이 공룡능선을 연상하듯 옹골찬 모습이네...

암릉 위에서 정상부의 봉우리가 보이면서 이어지는 암릉은 스릴감 넘치며 수직에 가까운 바위에 걸친 밧줄을 타고 올라서면 다시 감탄을 아니 할 수가 없네...

 

 

☞ 북봉 (능선3거리).. 지도상 영암산 위치

.암릉이 끝나고 흙길이 이어지면서 능선삼거리에 올라서니 밋밋한 토봉으로 된 지형도상 영암산 위치이나 볼거리 없는 봉우리(북봉 784m)라 정상석의 위치를 남쪽 봉우리로 넘겨 준 것인데 실지로 ‘성주’ 쪽에서 보면 이 봉우리(북봉)는 보이질 않는다고 한다. 우측으로 내려가면 신거리고개, 월명성모의집으로 내려갈 수 있다.

좌측으로 가면 정상부에 두 개의 봉우리(우측의 봉우리가 정상)가 보이는 전망터에서 밧줄구간을 내리 오르면 두 번째 봉우리격인 소나무가 어우러진 전망봉에서 뒤돌아보면 지나 온 동릉의 암릉이 한 눈에 바라보인다. (정상에서는 이 암릉을 바라 볼 수 없다)

 

 

☞ 영암산 정상 (남봉)

.<영암산 782m>, 돌탑, <선석.영암 7>위치목이 있는 영암산 정상석이 있는 정상에 올라서면 북삼면 일대와 중부내륙고속도로와 가야 할 선석산 줄기가 바라보인다.

영암산 남쪽 아래 수직바위에 설치된 수직계단 2곳을 내려오고 밧줄구간을 내려오니 전망바위 아래 슬랩바위에 걸친 밧줄구간을 다시 내려가게 된다.

동네 뒷산처럼 그저 그런 산 인줄 알았는데 보기보다 괜찮은 산이구나...

묵묘터를 지나자마자 조금 전 내려온 로프구간을 우회하여 내려오는 또 다른 길과 합류되는 갈림길을 지나 <←보손지 2.85 / ↓영암산(로프구간) 270 / →영암산 350> 능선은 순하게 이어진다. 아니 부드러운 내리막 숲길이다.

 

 

☞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선석산으로...

.친절한 이정표가 있는 보손지 갈림길(-↑) 2곳을 지나는데 보손지가 아닌 중리지를 가리키는 것이니 혼돈하지 말아야 할 것 이다.

곧이어 나타나는 세종대왕자태실 갈림길을 지나 선석산을 향하는 등로는 산책로 같은 너무 순한 길이다.

한동안 순하게 이어지는 등로는 영암산이 바라보이는 바위전망대를 지나 점차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하더니 시묘산 갈림길이 있는 선석산에 올라선다. 특이하게 서로 다른 이름의 정상석이 2개 있고 삼각점과 묘도 있네..

<누진산 742.4m><선석산 742.4m> <선석.영암 5>위치목 <→비룡산 2.5 / ←시묘산 3.7 / ↓영암산 2.8>

 

 

☞ 선석산의 이름

.선석산의 또 다른 이름인 서진산(棲鎭山) 대신 한자를 착각해 누진산(樓鎭山)이라 적혀 있는 정상석이 있는데 '서(棲)' 자와 '누(樓)' 자의 착오로 생긴 아이러니한 일이라 한다. 선석산의 이름은 선석사에서 유래한다.

제법 넓은 터를 가진 정상 터이지만 나무 때문에 조망은 별로네..

정상석을 뒤로하면 정면에 쉼터 같은 넓은 공터가 있는데 좌측으로 내려가야 된다.

 

 

☞ 세종대왕자태실이 보이는 용바위와 태봉바위

.곧 조그마한 푯말이 나무에 걸린 <↓정상 80m>, <↘불광교 1.8> 불광교 갈림길(세종대왕자태실y)을 지나 <용바위>안내문이 있는데 언뜻 보이기는 바위 모양이 용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운데 아마도 산 아래서 봤을 때 용머리 형상이겠다고 추측해보기로 하고 용바위에서 내려다보면 태실봉과 세종대왕자태실이 보인다.

용바위 안내문에 “낙동강과 가야산이 손에 잡힐 듯이 한눈에 보이는..” 이라고 표기돼 있지만 그렇지 않아 보이네...

<용바위>안내문에서 몇십걸음 지나자 바위 모양이 의자와 같은 의자바위를 지나 <선석.영암 4>위치목을 지나면 <태봉바위>안내문 앞에서 다시 걸음을 멈춘다.

조그마한 테라스형 바위전망대인데 이 자리에서 태봉자리를 살폈다는 설이 있단다.

조그만 저수지 밑에 선석사가 있으며 능선들이 좌우로 감싸 안은 듯한 형상의 가운데 오뚝한 태실봉 (선석사 우측에 볼록 솟은 동산)에 세종대왕 자태실이 있다.

“혹자는 이 지점이 연꽃의 한가운데라고 하고, 또 다른 이는 골짜기 양편의 산줄기가 여자의 양다리이며 태실이 위치한 자리가 여성의 음부에 해당된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당시의 내로라하는 지관들이 낙점한 만큼 명당 중의 명당이다.”

 

 

☞ 비룡산을 향해...

.태봉바위를 뒤로하면 곧 능선이 갈라지는 곳 왼쪽에 <↖비룡산>小푯말이 나무에 걸려있다. 우측으로 세종대왕자태실 가는 길이다. 비룡산으로 향한다. 순탄한 길이다.

산책길처럼 순한 능선이 계속되는 가운데 곳곳에 착한 이정표나 푯말이 있어 헛갈리는 지점은 없다.

묘를 지나 <두만리>小푯말이 걸린 두만리 갈림길(-↑)을 지나고 각산리(대흥사) 갈림길(“Y)에는 벤치가 놓여있어 쉼터 같다.

여유롭게 쉬어 간 후 다시 출발하면 좌측에서 올라오는 임도와 만나면서 우측으로 조금 오르니 임도 우측에 대흥사 갈림길(↑-)을 지나면서부터 조금씩 비룡산을 향해 완만하게 오름길이 시작된다.

 

 

☞ 비룡산

.임도 같은 넓은 길은 임도가 우측으로 꺾이는 지점 각산리(대흥사) 갈림길(↑=)을 지나자마자 남계리(구화사) 갈림길(-↑)을 지나면 비룡산 산불초소가 보이면서 바위군이 있는 돌탑을 지나 올라가면 비룡산 정상이다.

<비룡산 576m> 산불초소 <↑남계리(두만지) 1.3 / ↓각산리(대흥사) 1.5 남계리(구화사) 0.85>

시묘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너머 금오산이 바라보이고 하산지점인 두만지와 신유장군 유적지가 보인다.

 

 

☞ 두만지

.하산 길은 초반 가파르게 내려가다 이정표 없는 갈림길(“Y)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면 (우측은 능선) 배시기 갈림길(↖-)이정표 아래 샘터(1)가 있다. 겨울날씨에도 물이 잘 나오네.. (우측으로 오르면 능선과 만나겠네..)

<→배시기 2140 / ↓비룡산 380 / ↖두만지 820>.

이제 능선을 벗어난 등로는 산사면으로 진행하다 넓은 터에 돌탑, 너럭바위, 샘터(2)를 지나 대형 돌탑을 지나면 조그마한 개울 옆 <↓비룡산 1.3>이정표를 지나면 별장(?)에서 산길이 끝나고 넓은 길이 나타나면서 시멘길로 이어지고 영광사슴농장(*↑)과 두레두레식당(-↑)을 지나 두만지를 따라 가면 도로와 만나는 지점 <두레두레 / 구화사....여러 간판이 있다> 건너편에 <신유장군유적지>를 둘러보고 생활체육시설 운동장으로 내려와 “신유장군 유적지 관리사무소”에서 산행을 마무리한다.

 

 

.신유 장군 (1619~1680) 유적지 ; 이 고장 약목 출신인 장군은 인조 23년에 27세의 나이로 무과에 급제해 여러 무직을 거쳤다. 효종 9년(1658년), 청나라의 요청으로 원군을 이끌고 러시아군을 전멸시키는데 큰 공을 세웠다. 이를 나선정벌이라 하며, 장군은 이 원정의 전말을 북정일기라는 기록으로 후세에 남겼다. 이 일기는 우리나라와 러시아간 최초의 접촉에 대한 현지 사령관의 기록이란 점에서 세계적인 사료로 인정되고 있다. 그후 장군은 경상좌병사, 황해병사, 삼도통제사, 포도대장 등을 역임한 후 숙종 6년(1680) 향년 62세로 생을 마감했다. 경상북도 기념물 38호로 지정된 이곳 숭무사에는 신유장군의 영정과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신유 장군 유적지 경상북도 기념물 제38호로 지정된 곳으로 조선 효종 때 무장 신유(1619~1680) 장군을 모신 사당이다. 장군의 자는 경숙, 호는 봉하, 본관은 평산이다. 효종 9년(1658)에 일어난 나선정벌에서 장군은 정벌의 전말을 북정일기라는 기록으로 후세에 남겼는데 17세기 우리나라와 러시아간의 최초 접촉에 대한 원정 사령관의 기록이란 점에서 세계적인 사료로 인정받고 있다.

사당과 경역은 1979~1981년 보수, 정화했으며 내삼문인 선위문을 지나면 신유 장군의 영정과 위패가 봉안된 사당인 숭무사가 있다.

 

 

 

 

 

산행 사진

 

4번 국도상에 있는 숭오1리 버스정류장 건너편에 있는 <←미타암>안내문과 영암골기사식당



 


포장길 따라 가면 묘와 철탑이 있는 미타암(가정집을 개조한 듯)

 

<미타암>표석 우측으로..

 
 
 

바리케이드가 있는 임도 따라 진행하면...


<분묘조사공고>안내문이 있는 임도 삼거리(“Y)에서 좌측으로..


중리지 앞 삼거리(Y")에서 우측 임도 옆 산기슭에

<↑등산로(영암산) 2.8 / →등산로(영암산) 2.4>이정표에서 산길로 올라간다. (임도 무시)

 

 


좌우로 난 임도를 건너 다시 산길로 올라선다. <↓보손지 0.9 / ↑영암산 1.5>

 
 
 

등로 우측에 금오산(1)과 북삼면(2)이 조망되는 전망대를 맞이한다.

 


(1)



(2)


암릉구간


밧줄이 걸린 암봉


 


 


 


 


수직에 가까운 바위에 걸친 밧줄을 타고 올라서면 다시 감탄을 아니 할 수가 없네...

 
 
 


능선삼거리에 올라서니 밋밋한 토봉으로 된 지형도상 영암산 위치이나 볼거리 없는 봉우리(북봉 784m)


정상부에 두 개의 봉우리(우측의 봉우리가 정상)가 보이는 전망터에서..


 

두 번째 봉우리격인 소나무가 어우러진 전망봉에서 뒤돌아보면 지나 온 동릉의 암릉이 한 눈에 바라보인다.

 

 


정상


.<영암산 782m>, 돌탑, <선석.영암 7>위치목이 있는 영암산 정상석이 있는 정상



 


북삼면 일대


가야 할 선석산 줄기가 바라보인다.


중부내륙고속도로


.영암산 남쪽 아래 수직바위에 설치된 수직계단 2곳을 내려오고..


밧줄구간을 내려오니 전망바위


전망바위 아래 슬랩바위에 걸친 밧줄구간을 다시 내려가게 된다.


로프구간을 우회하여 내려오는 또 다른 길과 합류되는 갈림길


친절한 이정표가 있는 보손지 갈림길(-↑)


보손지가 아닌 중리지를 가리키는 것이니 혼돈하지 말아야 할 것 이다.

 
 
 

영암산이 바라보이는 바위전망대


선석산에 올라선다. 특이하게 서로 다른 이름의 정상석이 2개 있고 삼각점과 묘도 있네..

<누진산 742.4m><선석산 742.4m> <선석.영암 5>위치목 <→비룡산 2.5 / ←시묘산 3.7 / ↓영암산 2.8>


 


곧 조그마한 푯말이 나무에 걸린 <↓정상 80m>, <↘불광교 1.8> 불광교 갈림길(세종대왕자태실y)


 


용바위에서 내려다보면 태실봉과 세종대왕자태실이 보인다.

용바위 안내문에 “낙동강과 가야산이 손에 잡힐 듯이 한눈에 보이는..” 이라고 표기돼 있지만 그렇지 않아 보이네...


의자바위


<태봉바위>안내문 앞에서 다시 걸음을 멈춘다.

조그마한 테라스형 바위전망대인데 이 자리에서 태봉자리를 살폈다는 설이 있단다.


<태봉바위> 조그마한 테라스형 바위전망대

 
 
 

조그만 저수지 밑에 선석사가 있으며 능선들이 좌우로 감싸 안은 듯한 형상의 가운데 오뚝한 태실봉

(선석사 우측에 볼록 솟은 동산)에 세종대왕 자태실이 있다.


 

능선이 갈라지는 곳 왼쪽에 <↖비룡산>小푯말이 나무에 걸려있다. 우측으로 세종대왕자태실 가는 길이다.


각산리(대흥사) 갈림길(“Y)에는 벤치가 놓여있어 쉼터 같다.


 


임도 같은 넓은 길은 임도가 우측으로 꺾이는 지점 각산리(대흥사) 갈림길(↑=)

 

 

 

 

임도 같은 넓은 길 

 

바위군이 있는 돌탑 


비룡산 정상이다. <비룡산 576m> 산불초소 


 

시묘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너머 금오산이 바라보이고 ..

 


 하산지점인 두만지와 신유장군 유적지가 보인다.

 

 

배시기 갈림길(↖-)이정표 아래 샘터(1)가 있다. 겨울날씨에도 물이 잘 나오네.. 

 

넓은 터에 돌탑, 너럭바위, 샘터(2) 

 

 

 

대형 돌탑을 지나면.. 

 

조그마한 개울 옆 <↓비룡산 1.3>이정표를 지나면.. 

 

별장(?)에서 산길이 끝나고 넓은 길이 나타나면서.. 


 


 

두만지 

 

두만지를 따라 가면 도로와 만나는 지점 <두레두레 / 구화사....여러 간판이 있다> 건너편에 <신유장군유적지>

 
 
 

<신유장군유적지> 

 

 


 


 


 


 


 


 

생활체육시설 운동장으로 내려와 “신유장군 유적지 관리사무소”에서 산행을 마무리한다. 

 

“신유장군 유적지 관리사무소”